
나는 아동학대범이다. 왜냐하면 난 어제도 6살짜리(4살) 내 딸(아동)의 기분을 나쁘게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된다고? 비상식적이다고? 하지만 이러한 일은 요즘 교실에선 쉽게 일어나고 있다.
어제 하루동안 기분이 우울했다. 꽃같은 후배 교사가 찬란한 햇빛을 받지 못하고, 온갖 욕설을 듣고 정서적 학대를 받으면서 시들다 지쳐, 참다 못해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 끈을 잡아주지 못해, 햇빛을 받지 못한 환경을 만든게 내 탓인것 같았다.
사실 내가 육아휴직을 낸 이유 중 하나도 다음과 같다. 지금 무너져가는 교권의 상황을 봤을 때 분명히 나도 언젠가는 고소를 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잠시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선생님이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하게 되면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한다.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법적으로든)
선생님들은 잘 참는다. 아니, 잘 참아야한다. 왜냐고? 선생이니까. 너희들은 철밥통이니까. 돈받으면서 방학때 쉬니까.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말로 때려도 참는다. 아이들이 욕을하거나 떼리면 그냥 맞고 참아야한다. 손목을 잡는 것처럼 신체적으로 제압을 했다간 아동학대범이 되거나 남자 선생님의 경우는 성추행범이 된다.
아동학대범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참 쉽다. 그냥 금쪽이 기분만 나쁘게 하면 된다. 수업을 방해할 때, 다른 아이들을 괴롭힐 때가 아동학대범이 될 수 있는 확률이 높다. 금쪽이 뿐만 아니다. 숙제(책임)안 한 아이들 남겨서 지도를 하거나 받아쓰기를 시키기만 해도 아이들 기분이 나빠지니까 아동학대범으로 고소를 당한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자신의 감정이 타인에 의해 거부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경우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껴서는 안된다고 한다. 우리는 타인의 기분을 나쁘게 해서는 안된다고 배워왔는데, 요즘은 난 소중하니 어느 누구도 내 기분을 나쁘게 해서는 안된다고 배우게 된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로 인해 대부분의 선량한 아이들의 기분은 불편해진다.
내가 처음 교직에 들어왔을 때 '학생인권조례'란 것이 개정이 됐다. 의도는 좋다. 분명히 그로 인해 학생의 인권은 어느정도 신장된 점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선량한 피해자의 인권은 없어지고 가해자의 인권만 남아있게 되었다. 권리란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때 책임을 분명히 하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제지할 수 있는 민주적인(법치적인) 대책을 세웠어야했다. 여기에서 선생님의 교권에는 공백이 생겼다. 원칙적으로는 교권이 없으니 선생님은 책임을 다하지 않아도 되는걸까? (실제로 그런 일들은 벌어지고 있다. 그럼 또 그런다고 욕을한다.)
학생인권조례와 아동학대법을 칼처럼 이용하는 일부 학부모들 막을 방패같은 것은 없다. 피하기라도 해야할텐데 피할수도 없다. 왜냐고? 넌 선생이니까. 선생이면 그러면 안되니까. 그 결과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열정적이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먼저 이 전쟁터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과연, 이번 일로 인해 우리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내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되었을때 쯤이면 공교육은 정상화되고 모두 웃으며 교실에서 만날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 생각만으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서이초 선생님을 추모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