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육아 일기는 2018년 11월 20일부터 작성했던 기록을 티스토리에 옮긴 글 입니다.
지난주 금요일 마지막 산전검사를 받고 나가기 직전 담당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다.
"혹시 모르니까 소변검사 한 번 해볼까요?"
그 결과 단백뇨가 또 검출이 되었고, 주말 동안 나름 관리를 하면 월요일에 괜찮아지겠지 생각을 했다. (막달 검사 1차 단백뇨가 검진 되었고, 재검때는 안나왔으니까)
그리고 대망의 11월 19일이 되었다. 검사 결과를 보고계신 원장님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오늘 유도 분만하셔야 겠어요. 이번에는 +++로 검출되었어요. 혈압과 태동은 정상인데 임신 중독증이라는게 갑자기 진행될 수 있는거라. 예정일도 지났으니 시도해보죠."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상황이 전개되니 두근두근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안되. 이럴 순 없어. 우리가 예정했던 마지막 만찬인 막둥이 회관의 갈비탕을 먹을 수 없다니.'
그렇다. 이 와중에도 먹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린 마지막 만찬을 먹고 5시 30분까지 돌아오기로 한 후 등촌으로 향했다.
그 맛있는 등촌이 예전 같지 않았다. 사실 분만 걱정이었겠지만 괜히 주인장 음식 손맛이 변하지 않았는지 의심만 해보고...그래도 우리 나여님이 맛있게 먹어줘서 다행이다.
우리의 만찬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분만이 길어질지 모르니까 오빠가 기다리면서 먹을 샌드위치 사야겠다."
파리바게트로 가는 나여님. 자기 몸 걱정하기에도 모자란데 남편까지 챙기는 나여님. 역시 최고!
17시 20분에 병원에 가서 입원 수속을 마친 후 바로 가족분만실로 갔다.
'아 진짜 시작되었구나.'
미안함과 걱정 등 어떤 감정인지 모를 것들이 뒤섞여 눈물샘을 자극했지만 내가 울면 더 긴장할 나여님을 위해 꾹 참았다.
분만복으로 갈아입고 거의 바로 간호사님의 내진이 있었는데 1cm 밖에 안열렸단다.
19시경 그렇게 본격적인 유도 분만이 시작되었다.
제모를 하고 관장을 바로 하였다. 5분을 참아야한다는데 그 신호는 폭포의 세기로 바로 오는걸.... 화장실로 바로 직행한 후의 일은 나여님만 알 터. 1시간 30분 전에 밥을 먹었는데 지금 관장을 해도 되나 싶었지만 그냥 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잠시 후, 어마무시한 바늘을 장착한 주사기(보통 바늘보다 좀 두꺼움)와 임신중독방지 수액(MgSO4, 신경억제제, 이게 진통효과도 있어서 자궁 수축을 좀 방해할 수 있다고 했다.)을 들고 간호사님이 재등장하셨다.
베테랑같던 간호사님은 2번의 실패후에 핏줄과의 도킹에 성공하셨고....나여님은 주사를 맞아본 적이 별로 없거니와 안그래도 아픈 주사여서 더 아파했다. 그리고 이런 몸의 구속을 싫어하는 나여님에겐 죄수 목에 채우는 칼처럼 힘들었을 것이다.
30분 후, 하얀 올챙이 처럼 생긴 좌약(사실 이건 유도분만제, 프로페스)을 들고 온 간호사님, 잠시 후 다가 온 충격. 폭풍 검색 결과 내가 알고 있는 유도 분만제는 분명 수액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수액은 옥시토신이라는 유도촉진제로, 유도분만제를 넣고 12시까지 분만을 못하면 자궁을 강제로 수축시키기 위해 맞아야 한다고 했다. 즉 유도분만제인 프로페스는 봄이가 세상으로 나오는 출구를 부드럽고 얇게 해주는 역할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 찾아온 힐링 타임. 우리의 힐링은 배구 시청이다. 19시 47분, 아직 진통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에 나는 집으로 가서 브라우니 밥도 챙겨주고 혹시 길어진 분만을 위해 이것 저것 준비물을 챙기러 갔었다.
다시 병원으로 도착하니 약 21시, 우리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드라마인 뷰티인사이드까지 보던 중 분만을 담당 원장님께서 들어와서 2차 내진을 하셨는데 2cm 열렸단다.
"이제 점 점 진통이 시작 될거에요."
'잉??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22시 10분 부터 찾아온 진통의 시작.
'어떤 사람은 1박 2일동안 진통이 왔다는데'
'내가 아는 누구는 진통만 잔뜩 겪다가 무통도 풀리고 결국엔 제왕절개 했다는데'
'유도분만제 맞으면 진통만 길어진다는데'
걱정도 물밀듯 시작이 된다.
수축 정도가 30~50, 그리고 그래프상에서 일정한 패턴을 띈다는 것을 관찰하고 이게 진진통이라고 직감하였다.
진통 측정기 어플로 체크해보니 '진진통입니다. 곧바로 병원으로 가세요.'
하지만 우린 이미 병원이고 분만실에 와있다네.
이렇게 23시,
나여님은 많이 아파하고 그래프 패턴도 살짝 불규칙해지면서 60대를 넘기는 순간, 무통 마취를 놓는다며 간호사님이 들어오셨다. 이때 보호자인 나는 나가 있어야 한다해서 나가 있었다. 잠시 후 마취과 선생님이 오셔서 무통주사를 놓아주시고 나오셨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는데 나는 순간 '안에서 뭐가 잘못됐나' 걱정을 하고 괜히 밖에서 기웃기웃 거리고...
잠시 후 무통 천국이 시작되었나보다. 진통도 거의 없는 편안함. 언제 무통이 끝나 진통이 시작 될 지 모르니 일단 자두자.
나여님이 잠든 것을 본 뒤 난 집에서 가져온 슬랭덩크를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 사게 된 슬램덩크 신장재편판!! )
※ 난 이미 5년 전에 2023년에 슬램덩크가 다시 유행할 줄 알았던 것인가!
그리고 잠시 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얼마나 잤을까 간호사님의 노크에 화들짝 깼다. 다시 내진.
"무통 효과가 좋으시네요."
호호. 혹시 무통때문에 분만이 늦어질까 걱정을 하였는데 원장님께서 아기도 잘 내려오고 있어서 지켜보자고 하시면서 프로페스를 제거하셨다.
지금부터 빨리지는 전개
2시 30분.
양수가 터졌다. 그리고 간호사님이 양수 맞으니 똥쌀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말해달라고 하셨다.
3시.
간호사님이 지금 부터 연습해보자시면서 힘주기 연습 시작. 빠르면 30분, 길면 1시간이 걸린다는데 나여님이 아주 잘해주고 있었다. 나여님 머리를 받쳐주고 같이 호흡하고 함께 힘주고, 고통은 느끼지 않지만 분만 과정에 참여하면서 심적 안정감이라도 생기길 바랐다.
3시 20분.
빠르면 30분이라는데 그 어려운 것을 20분만에 해내다니! 엄지척
원장님 등장. 가족분만 한다고 해서 끝까지 난 옆에 있을 수 있었다.
한 번 힘!
두 번 힘!
그러더니 "힘빼세요"
11월 20일 3시 27분
2.7kg, 49.5cm
그리고 난 그 순간을 생생히 목격하였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그 순간. 그리고 숫자들.
우리 아이, 우리 천사. 우리 딸 봄이가 세상에 처음 나오는 모습을.
바로 울음이 터져 나와 다행이었고,
그 작은 입과 코에 막힌 이물질을 제거하려고 호스를 넣는 것을 볼 땐 나도 고통스러웠다.
(울고있는 봄이에게 "봄이야" 라고 부르니 울음을 뚝. 우연인가 아님 우리의 목소리를 아는건가. 아무튼 감동이었다.)
너무나 빨리 진행 되어서 마치 인터스텔라를 보고 난 후에 느겼던 비현실감이었지만,
"봄이야 고생했어." 라고 말하며 탯줄을 자르고, 신생아실에 가서 후처치를 하고, 뭔가 설명을 듣는 동안도 한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지만, 가슴에서는 이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잠시 후 분만실에서 모자동실을 한 우리.
내 딸이라 그런지 이리봐도 예쁘고, 저리봐도 예쁘다.
대부분 눈을 감고 있다는데 눈을 뜬 채 엄마, 아빠랑 눈맞춤도 하고 뭔가 신기한지 여기 저기 쳐다보고 그래서 약 20분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다.
힘든 분만. 그것도 성공률이 50%도 안되는데다, 임신중독 의심까지 오는 상황에서 유도 분만.
그 힘든 과정을 묵묵하게 이겨내준 나여님. 정말 고생했고, 고마워요.
그리고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사랑하는 제 아내와 딸을 곁에서 지켜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신앙 생활 잘 할게요.
그리고 봄이야. 봄이도 힘든 출산 과정을 씩씩하게 이겨내주고 건강하게 나와서 고맙고 고맙구나.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너를 지지해주고 너에게 존경 받는 부모가 되도록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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